日本で最初の有料道路
にっぽんでさいしょのゆうりょうどうろ
日豊本線 中津駅の南13km、中津日田道路 青の洞門・羅漢寺I.C.から北西に1km、青の洞門公共駐車場(中津市本耶馬渓町曽木)の道路東側エリアの奥に看板が立つ。
日本で最初の有料道路…そーなのかー。 pic.twitter.com/deruvsXEFM
— カラス (@karabouya) July 9, 2023
写真
碑文
日本で最初の有料道路「青の洞門」
"The First Toll Road in Japan" Aonodomon (Blue Tunnel)
“日本最早的收费道路” 青之洞门
「일본 최초의 유료도로」 아오노도몬 동굴The Edo era saw the construction of irrigation canals in this region, which halted the flow of River Yamakuni and raised its water levels of rivers throughout this entire region. People who needed to travel past this perilous area had to do so by holding on to iron chains that were hung from the cliffs of Kyōshuhō. Zenkai was a famous Buddhist priest who stopped by Yabakei Gorge in his travels through the area. He was saddened to learn how so many people and horses had lost their lives along this route, and it was he who began to dig into the rock face on his own in 1735.
The first inauguration ceremony of the tunnel was held in 1750, and oral records survive of people being charged passage fees of 4 mon (approximately 70 yen today), while cattle and horses were charged 8 mon (approximately 140 yen today). This is said to be the very first toll road in Japan.
The domon measuring 342 meters (of which the tunnel measures 144 meters) long was finally completed in 1764, almost 30 years since it was first begun. Extant photographs and documents show how Aonodomon and the Kyōshuhō cliffs that soar above it had apparently become a popular touristic area by the middle of the Meiji era, with numerous visitors coming from all over Japan.由于江户时代开始建设用于灌溉的水渠,因而山国川的水被截住,这一带河流的水位升高了。为此过路人一直以建在竞秀峰岩壁上的铁链为救生索在非常危险的道路上通行。旅行途中顺便去了耶马溪的禅海和尚,看到由于这条危险道路人和马丧命的情景,感到非常痛心,就从享保20年(1735年)开始凭借一己之力开凿岩壁。
据传宽延3年(1750年)举行了第一次竣工仪式,开通后按“人4文钱(现在的币值约合70日元)、牛马8文钱(现在的币值约合140日元)”彳也被称为“日本最早的收费道路”。
明和元年(1764年),花费了大约30多年时间全长342米(其中隧道部分144米)的 青之洞门终于竣工了。通过现存的许多照片及资料可以认定,青之洞门和耸立在 其上的“竞秀峰”一道,在明治时代中期就已成为来自日本全国的众多游客造访 的游览名胜了。에도 시대에 시작된 관개용 수로 건설에 의해 야마쿠니 강의 물이 막혀, 이 주변 일대는 강의 수위가 높아졌습니다. 그 때문에 통행인들은 교슈 봉우리의 암벽에 설치된 쇠사슬을 생명줄로 여기며 매우 위험하게 길을 지나다녔습니다. 여행 중에 야바케이에 들른 젠카이 (禅海) 스님은, 이 위험한 길에서 사람이나 말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며 교호 20년(1735년)부터 암벽을 파기 시작 했습니다.
간엔 3년(1750년)에는 제1차 낙성식이 있었고, 개통 후에는 '사람은 4문(현재의 화폐가치로 약 70엔), 소, 말은 8문(현재의 화폐가치로 약 140엔)'의 통행료를 징수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으며, 일본 최초의 유료도로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와 원년(1764년), 약 30여 년의 세월에 걸쳐 전장 342m (그중 터널 부분은 144m)의 동굴 터널을 드디어 완성시켰습니다. 현존하는 다수의 사진과 자료를 통해, 아오노도몬은 그 위로 우뚝 솟은 '교슈 봉우리'와 함께, 메이지 시대 중기에 이미 일본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江戸時代に始まった
灌漑 用水路の建設によって山国川の水がせき止められ、この辺一帯は 川の水位が上がりました。そのため通行人は競秀峰の岩壁に作られた鉄の鎖を命綱にして大変危険な道を通っていました。旅の途中に耶馬渓へ立ち寄った禅海和尚は、この危険な道で人や馬が命を落とすのを見て心を痛め、享保20年(1735年)から自力で岩壁を掘り始めました。
寛延3年(1750年) には第一次落成式が行われ、開通後には「人は4文(現在の貨幣価値で約70円)、牛馬は8文(現在の貨幣価値で約140円)」の通行料を徴収したという話が伝わっており、日本で最初の有料道路とも言われています。
明和元年(1764)、約30年余りの時間を費やして全長342m(うちトンネル部分は144m)の洞門をついに完成させました。現存する数々の写真や資料から、明治時代中期には洞門上にそびえる「競秀峰」とともに、日本全国からたくさんの観光客が訪れる観光名所となっております。中津市 寄贈 中津商工会議所